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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오버 리뷰 (숙취,우정,미스터리)

by 잡무가 2025. 12. 15.

숙취로 시작된 하루, 기억을 잃은 밤의 퍼즐

‘행오버(The Hangover)’는 제목 그대로, 전날 밤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 채 끔찍한 숙취로 아침을 맞이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블랙코미디다. 이야기의 시작은 전형적인 미국식 총각 파티(Bachelor Party)다. 결혼을 앞둔 더그를 위해 친구들이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떠나고, 화려한 밤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자신들이 묵던 스위트룸이 완전히 엉망이 된 상태에서 깨어난다. 중요한 건 더그가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전날 밤의 기억이 아무도 없다.

숙취로 인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친구들은 조각난 단서를 바탕으로 하나씩 전날 밤의 행적을 복원해 나간다. 호텔에 남겨진 호랑이, 옷장이 아닌 욕실에 갇힌 아기, 경찰서, 낯선 결혼식 등 이들의 여정은 점점 더 기괴하고 황당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이 연결되어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면서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미스터리 스릴러의 구조를 띠게 된다.

‘행오버’는 ‘무엇이 문제였는가’보다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따라가는 독특한 플롯 구조를 가지고 있다. 관객은 주인공들과 함께 ‘과거’를 추적하게 되며, 미친 듯이 웃기는 장면 속에도 긴장감이 유지된다. 영화는 극단적인 설정과 엉뚱한 캐릭터들의 행동을 통해 큰 웃음을 주지만, 동시에 관객 스스로도 ‘기억을 잃은 상태’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숙취는 단순한 육체적 증상이 아니라, 서사의 장치이자 몰입 장치로 기능한다.

각기 다른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브로맨스의 변주

‘행오버’의 중심에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네 친구가 있다. 리더격인 필(브래들리 쿠퍼)은 시니컬하면서도 현실적인 성격, 치과의사 스튜(에드 헬름스)는 억눌린 감정과 우유부단함, 괴짜이자 예측불가능한 앨런(잭 갈리피아나키스)은 영화의 폭탄 같은 존재다. 마지막으로 실종된 신랑 더그까지, 이들은 각자의 성격 차이로 인해 끊임없이 충돌하고 갈등하지만, 동시에 위기를 극복하며 유대를 쌓아간다.

브로맨스라는 단어가 ‘행오버’만큼 잘 어울리는 영화도 드물다. 전형적인 남성 우정의 전개를 따르되, 극단적으로 비틀고 과장된 상황 속에서도 결국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특히 앨런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그의 기이한 행동과 어색한 유머는 때로 불편함을 주지만, 동시에 영화의 주요 전개를 이끌고 가장 순수한 진심을 가진 인물로 관객에게 각인된다.

또한, 스튜의 성장 역시 주목할 만하다. 억압적인 여자친구에게 눌려 살던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인생과 사랑을 자각하게 되고, 결국 그동안의 틀을 깨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행오버’는 황당한 코미디이지만, 그 속에는 각 인물들의 내적 변화와 성장이 함께 담겨 있다. 남성들 사이의 유대, 책임감, 자아의 발견은 코미디 외적인 영화의 또 다른 뼈대를 구성한다.

미스터리와 코미디의 경계를 허무는 연출

‘행오버’가 단순한 B급 코미디 영화로 남지 않은 이유는, 그 독특한 서사 구조와 연출 때문이다. 영화는 전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결과’를 먼저 보여준 뒤 ‘과정’을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방식은 미스터리 장르에서 흔히 쓰이는 기법이지만, 코미디 장르에서는 드물게 활용되며 신선함을 제공한다.

관객은 처음부터 궁금증을 갖게 된다. 도대체 왜 스위트룸에 호랑이가 있는가? 왜 치과의사는 앞니가 빠졌는가? 왜 지갑엔 경찰서 명함이 들어 있는가? 이런 단서들은 마치 셜록 홈즈의 사건 파일처럼 하나하나 연결되며 극의 긴장감을 이끌고, 동시에 코믹한 반전으로 관객을 폭소하게 만든다. 이러한 전개는 코미디에 서사의 밀도를 부여하고, 관객이 끝까지 몰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또한 영화는 라스베이거스라는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이 도시는 상식과 규칙이 통하지 않는 공간, 본능이 폭발하는 공간으로 자주 그려진다. ‘행오버’는 이 공간의 혼란스러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캐릭터들이 겪는 비상식적인 사건들이 설득력을 갖도록 만든다. 결국, 비정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비정상적인 일들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이야기로 결론 지어지는 것이다.

‘행오버’는 단순한 숙취 코미디가 아니다. 기억을 잃은 채 퍼즐을 맞추듯 전날 밤을 복원하는 서사 구조, 개성 강한 캐릭터의 충돌과 성장, 미스터리와 블랙코미디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웃음 속에도 긴장과 감정을 품은 작품으로 완성된다. 웃다가 놀라고, 또 감동하게 되는 이 독특한 영화는 성인 코미디의 수작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