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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금지된사랑, 예술, 감정)

by 잡무가 2025. 12. 13.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은 셀린 시아마 감독이 2019년에 발표한 프랑스 영화로, 아델 에넬과 노에미 멜랑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여성 화가와 초상화를 그려야 하는 귀족 여성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퀴어 로맨스를 넘어, 여성의 시선과 감정, 그리고 사랑과 이별의 복잡한 층위를 고요하지만 깊게 다룹니다. 금지된 사랑의 아름다움과 불가피한 이별의 순간을 예술적인 언어로 풀어내며, 이별 후 깊은 여운을 남기는 감성 영화로 손꼽힙니다.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랑

이 영화는 남성 중심적 시각이 배제된 몇 안 되는 로맨스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주인공 마리안은 여성 화가로, 다른 사람의 초상을 그리기 위해 고용되어 섬으로 도착합니다. 그녀의 모델이자 귀족 여성인 엘로이즈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초상화가 완성되면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초반에는 엘로이즈 몰래 그림을 그려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호기심, 감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남성의 개입 없이 여성 둘만의 관계를 통해 사랑이 자연스럽게 자라나며, 이 과정에서 두 인물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 말 없는 감정의 교류를 통해 감정이 깊어집니다.

여기서 ‘바라본다’는 행위는 단순한 관찰이 아닌, 감정적 연결이자 주체적 사랑의 표현으로 작용합니다. 영화 내내 두 인물은 말보다 시선과 호흡으로 교감하며, 관객은 그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연애의 표현을 넘어, ‘보는 존재’와 ‘보여지는 존재’의 경계를 허무는 강력한 영화적 언어로 기능합니다.

예술로 남은 사랑의 흔적

마리안은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완성하지만, 그 결과물은 그들의 감정이 담긴 그림 그 자체가 됩니다. 그림은 단순한 작업물이 아닌,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이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감정의 기록입니다. 그림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고, 동시에 그것으로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은 영화의 가장 큰 감정적 모티브입니다.

예술이 감정을 어떻게 보존하고 또 고정시키는지에 대한 질문은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마리안은 엘로이즈를 잊지 못해 화집에 그녀의 뒷모습을 그려 넣고, 박람회에서 만난 그림에서도 그녀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기억 속에서 엘로이즈는 계속 살아 있으며, 사랑은 끝났지만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예술과 감정, 사랑과 기억이 얽힌 복합적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관객은 단지 한 편의 로맨스가 아닌,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감정의 정수를 바라보게 되며, 이별의 아픔보다 사랑했던 순간의 숭고함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별의 선택과 감정의 잔존

영화의 결말은 단순한 이별이 아닌, 선택과 감정의 고백입니다. 두 인물은 결국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헤어지지만, 감정은 완전히 끝나지 않습니다. 엘로이즈는 결혼을 하게 되고, 마리안은 그녀를 떠나지만 서로의 감정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전체를 요약하는 장면으로 꼽힙니다. 공연장에서 엘로이즈를 발견한 마리안은 그녀가 듣고 있는 음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이 장면은 그들이 함께했던 짧은 시간과 사랑, 그리고 헤어진 이후에도 남아 있는 감정이 얼마나 깊고 진실된지를 보여줍니다.

관객은 이별이 반드시 눈물과 절규를 동반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영원한 흔적을 남길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슬픔은 침묵 속에서 더 크게 울려 퍼지고, 사랑은 말이 아닌 표정과 음악, 기억을 통해 전달됩니다. 이별 후 감정을 정리하고 싶은 이에게 이 영화는 큰 울림과 정서적 위로를 선사합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사랑이 시작되고, 완성되며, 끝나는 과정을 예술적 언어로 담아낸 걸작입니다. 금지된 사랑의 형식을 빌려 보편적인 감정의 깊이를 조명하며, 이별의 슬픔보다는 사랑했던 순간의 아름다움에 집중합니다. 이 작품은 이별 후에도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예술과 기억 속에 살아 숨 쉰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