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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인어비스 분석 (모험,심연,희생)

by 잡무가 2025. 12. 15.

모험의 낭만과 공포가 공존하는 세계, 깊이를 향한 여정

‘메이드 인 어비스(Made in Abyss)’는 겉보기엔 아기자기한 캐릭터 디자인과 동화 같은 배경을 지닌 모험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깊고 어두운 심연을 파헤치는 잔혹하고도 철학적인 이야기다. 주인공 리코와 레그는 ‘어비스(심연)’라 불리는 거대한 수직형 동굴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여정을 떠난다. 이 ‘어비스’는 단순한 탐험지가 아니라,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자, 무의식과 존재의 경계를 탐험하는 장소다.

작품은 모험이라는 장르가 가진 환상과 희망을 정면으로 뒤엎는다. 리코는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 어비스의 밑바닥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길은 동경이나 낭만이 아닌, 고통과 상실, 생존의 반복이다. 각 층마다 존재하는 생물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생태계와 위협을 지니고 있으며, 하강하는 깊이에 따라 발생하는 ‘어비스의 저주’는 신체적, 정신적 괴로움을 수반한다. 이러한 구조는 시청자에게 한 번 내려간 길은 돌아올 수 없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결국 모험은 곧 죽음과의 대면이며,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집착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메이드 인 어비스’는 탐험이라는 개념을 로맨틱하게 포장하지 않고, 철저하게 현실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며, 그 안에 담긴 잔혹한 진실을 정면으로 그려낸다.

심연의 구조와 세계관, '어비스'는 인간 존재의 은유

어비스의 구조는 단순히 깊이를 가진 공간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철학을 담고 있는 상징 체계다. 1층부터 시작해 6층, 7층 이상으로 갈수록 인간의 몸과 정신은 점차 손상되며, 더 이상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6층부터는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치명적인 저주가 기다리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피지컬적 현상을 넘어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어비스를 통해 인간이 추구하는 지식, 진리, 사랑, 신념 등이 때로는 파멸을 부르기도 한다는 점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탐험가들은 각자의 이유로 어비스에 몸을 던지지만, 결국 대부분은 죽음 혹은 비인간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오본야, 봄베, 리샤, 그리고 나나치와 미티의 에피소드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에 접근하려다 파멸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특히 나나치와 미티의 이야기는 인간성과 윤리, 실험과 희생이라는 주제를 강렬하게 다룬다. 미티는 인간 실험의 결과로 불사의 존재가 되었고, 그 고통은 나나치에게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는다. 이 에피소드는 잔혹한 설정을 통해 시청자에게 진한 감정의 여운을 남기며, 이 작품이 단순한 생존물이 아닌, 인간의 존재론적 고통을 다룬 철학 애니메이션임을 명확히 한다.

희생의 서사와 성장의 이면, 순수함의 잔혹한 대가

‘메이드 인 어비스’의 주인공 리코는 어리지만 매우 강한 의지를 지닌 소녀다. 그녀는 어머니를 찾아 어비스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겠다는 의지로 모든 고통을 감내한다. 하지만 그 순수한 동기조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 파괴’에 가까운 집착으로 변해간다. 리코는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죽음과 비인간적인 현실을 마주하며 점차 변화하고, 시청자 또한 그 변화의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레그 역시 정체불명의 기계 소년으로, 감정을 배워나가며 리코와의 유대 속에서 인간성을 얻어간다. 그는 리코를 보호하려 하지만, 때로는 그 힘이 무력감을 낳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이 두 인물의 여정은 ‘성장’을 말하지만, 그 과정은 일반적인 성장이 아니라, 트라우마와 희생을 바탕으로 한 고통스러운 진화다.

작품이 주는 가장 큰 충격은 ‘어린 주인공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가혹한 세계’를 마주하게 만들며, 그럼에도 그들이 절망 속에서 선택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어비스’는 그 자체로 인간의 내면, 심연, 억눌린 욕망을 상징하며, 리코와 레그의 여정은 그러한 무의식을 향한 탐험이기도 하다.

‘메이드 인 어비스’는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감정적으로 매우 소모적이며, 잔혹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삶과 죽음, 인간성과 윤리, 성장과 상실이라는 깊은 주제가 담겨 있으며, 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진지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이 작품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모험이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진 그림자와 마주하는 과정이다. 어비스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 어비스 또한 우리를 들여다본다는 니체의 말을 그대로 체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